본문 바로가기

Tijuana,Mexico 2020.03-/일상

일곱째글, 한국어 공부

멕시코에 온지 6년차인 꼬레아나, 그 전에 스페인에서 얼추 1년, 그리고 그 전에 서울 모처의 스페인어 학원에서 몇개월

스페인어를 익히기 시작한지 도합 7년이 넘었다

한국에서는 주1회 취미로, 스페인에서는 늦깎이 어학연수생 자존심으로 나름 아등바등, 멕시코에서는 실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익히다보니 대부분의 상황에서 큰 불편 없이 스페인어로 대응할 정도는 된다

 

멕시코에 온지 2년차인 아르헨티노, 고등학교 시절 미국에서 2년 가까이 생활한 적이 있다지만 영어 울렁증이 있어 아주 간단한 대화 외에는 영어가 어렵다

그 외에는 멕시코가 첫 해외 경험이고 아르헨티나, 그 중에서도 꼬르도바 억양이 짙게 뭍어나는 스페인어를 구사하며,  당연히 스페인어로 듣고 말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지만 낯가림이 심해 식당이든 어디든 대부분의 상황에서 꼬레아나가 필요한 회화를 담당하게 한다. 

덕분에 종종 식당이나 상점에서 나는 스페인어를 하는 외국인, 티노는 스페인어를 못하는 외국인으로 오해를 받은적도 있다. 

 

쨌든 우리의 공용어는 스페인어지만 언젠가 같이 한국에 가게되거나 우리 가족을 만날지 모를 그 만약을 대비해서,

그리고 티노의 테라피스트아자 친구이기도 한 루이스가 마침 '너는 몸을 많이 쓰는 직업이니 신체피로도가 높은데 비해 머리를 덜 써서 정신적인 피로도가 낮은 편이야, 균형을 위해서 머리를 좀 더 쓰는 뭔가가 필요해, Ana한테 한국어 좀 배워, 숙제야, 땅땅' 하고 정신테라피(ㅋㅋㅋ) 처방을 내려준 덕분에 본격적인 한국어 공부가 시작됐다

 

자격증은 고사하고 남한테 한국어 가르쳐 본 경험이 전무한 나와 한국어라곤 내가 습관적으로 내 뱉는 진짜~ 와 운전 중 종종 나오는 나쁜 말 한가지, 한참 전 대유행 때 배워뒀는지 용케 기억 하고 있는 오빤 강남 스타일~(이건 꼭 리듬 타고 해야 발음 가능) 뿐인 티노....

 

한글부터 가르치고 글자들을 조합해 단어를 쓰는 방법을 아주 천천히 가르치면서 단어, 짧은 문장 받아쓰기를 한다

 

주말에는 동네 카페에 마주 앉아 두어시간씩 티노는 한국어 공부, 나는 공부를 봐주면서 블로그나 다른 일들도 하고 평일에는 종종 받아쓰기 숙제도 내주는데 정성스럽진 않지만 용케 밀린지 않고 숙제를 한다

 

숙제를 들고 만난 날에는 세상 당당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빼곡히 한글이 적힌 이면지를 내 손에 쥐어준다

 

처음으로 한글 자모음 알려주던 날

 

-이거는 뭐야? 무슨 소리나?

-그건 이응이야, 스페인어 H처럼 묵음인데 한글 쓸 때 모음 혼자서는 쓸 수가 없어서 도와주는거야, 근데 받침에 쓸 떄는 영어 -ing 같은 발음이 나는데 스페인어에는 이 발음이 없네..

-오.......이건 뭐야? R는 rrrrr 고, L는 엘레인데? 

-그건 ㄹ인데 한국어에는 스페인어식 R발음은 없어, (스페인어에서는 보통 R이 따르르릉 할때 ㄹㄹㄹ 연속 발음처럼 두바퀴 굴리는 소리가 난다) 영어나 스페인어에서 R,L은 한글로 쓸 때는 둘 다 ㄹ 로 쓰면 돼

 

단어 몇개를 예시로 써준 후 간단한 숙제를 줬다,

 

-네 성을 한글로 써봐, 쓸 수 있겠어?

-오케이, 할 수 있겠어

 

더듬더듬 자음,모음 표를 훑는 눈과 손.....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어서 일부러 다른 곳 보는 척 시선을 피해줬다

한글로 옮겨적으면 네글자인 본인 성을 적는데 3-4분 가까이 걸린 티노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다 됐다며 스윽 손을 내렸고 저 심각한 표정을 봐서라도 절대 웃거나 당황하지 말아야지 하고 종이를 내려다 본 나는 1초도 웃음을 참지 못했고 티노는 다시 심각해졌고..... 

 

 

빨간색이 티노가 쓴 부분, 참고로 티노의 성은 '우르키사'

그렇게 진지하게 ㅇ의 역할을 묻고 답했지만 응용은 아직 어려웠던 티노.. 

 

첫 수업에서 소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열심히 두시간을 끙끙거린 티노는 이내 머리가 아프다며 레몬타르트와 내 아이스라떼를 털어 마시고 펜을 내려놨다

 

이게 어느새 3주 전이고 둘 다 자기주도 학습을 하기에는 너무 게으른 스타일이어서 주말에는 한글 공부, 주중에는 회화 위주로 간단한 문장 연습들을 하고 있다, 얼추 다음 문장들은 말할 수 있게 된 티노

 

-안녕하세요

-저는 티노입니다

-저는 아르헨티나 사람 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가 유난히 어려운 티노, 매번 강답습니다 에 비슷한 발음으로 따라하다가 열에 아홉은 뜬금없는 강남스타일을 외치고 말춤을추며 자연스레 공부 분위기에서 빠져나간다....)

-주세요, 고맙습니다

-싫어요

-네

 

학창시절에도 공부와는 친하지 않았다던 티노는 천성을 억눌러가며 나름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고, 며칠 전에는 같이 차를 타고 가는 길 위의 문장들을 줄줄 읊어대는 뜬금없는 한국어랩을 선보여 나를 놀라게 했더랬다...

앗녕하쎼요, 저는 아르헨띠나 싸람입니다,강갑습니다,주쎼요, 코맙씀미다, 네~ 

 

정말 나만 보기 아까운 모습인데.....위에 말한 것 처럼 낯가림이 심한 티노는 정말....너는 내숭 정말..... 아마 어지간한 티노 멕시코 친구들도 이런 모습까지는 모르겠지..... 나만 보기는 아깝지만 사실 남 보여주기에도 썩 자랑스럽지는 않은 티노의 한국어 랩.... 

 

어찌됐든 지금은 일방통행 한국어만 가능하지만 연말쯤에는 간단한 인삿말 정도는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도를 기대하며 계속 공부하기로

 

틀린 글자 찾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