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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juana,Mexico 2020.03-/일상

여덟째 글, 잘도 먹네

먹성이 좋은 티노

신기하리만큼 가리는 음식도 없고 처음 보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나도 먹는걸 좋아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음식이나 맛이 예상되는 음식들에 한해 즐기는 편인데 티노는 그런 편견이 1도 없어 보인다

 

연애 극초반의 티노는 시합을 앞두고 감량 중이어서 그저 다이어트 중에 오는 허기짐 정도로, 시합 후에는 그간 못먹은데 대한 갈증 해소 정도로 잘 먹네 했는데 계속 보다보니 그냥 먹성이 아주 너는 정말

 

초반에는 배낭 하나 둘러메고 고향 떠나 도착한 멕시코에서 초반 정착에 갖은 고생과 연이어 터진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식탐이 조금 생긴 것 같다는 티노의 말에 아이쿠,짠해라 했는데 반년이 지난 지금 저 소리가 나오면 작작해라 진짜, 너는 그냥 애초에 먹는걸 좋아하게 타고난거야, 그렇게 잘 먹는데 소화도 잘 시키니 다행인줄 알아라 한다

 

식탐이래봤자 남의 것 탐내는 욕심 보다는 그저 먹는 양이 많고 한번 먹기 시작하면 배불리 먹는걸 좋아하는 정도라 우리집에 오면 밥이든 간식이든 양껏 먹게 두는 편이다

 

티후나아에 온 이후 한달에 두어번 한국슈퍼에 가서 한국 라면,과자,쌀 등을 떨어지지 않게 사두고 종종 만두나 떡볶이 같은 것들도 사다 두었는데 라면도, 냉동식품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라 가끔은 몇달씩 찬장에, 냉동고에 잠들어 있던 부식들이 티노가 오면 깔끔히 정리가 된다 

 

초반에는 내가 몇번 끓여준 일반 국물라면을 땀 뻘뻘 흘리며 먹던 티노는 매워서 먹을 수 있을까 싶던 불닭짜장을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흡입하고 뒤늦게 맛본 까르보불닭에 Favorito(최애) 라면 칭호를 내려줬다

 

정말 내가 먹는 모든 한식은 한치의 의심도 주저도 없이 따라 먹는 티노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고 두어시간 후 주방에서 다 식은 찌개에 든 고기를 몰래 건져 먹을 줄 알고, 삼겹살은 상추에, 된장찌개는 두부 잔뜩 건져 밥에 비벼먹을 줄 아는 멋진 한식러가 되었다... 

 

쨌든 서론이 길었는데 티노는 정말 잘 먹고 음식에 대한 편견이 없다, 하지만 너무 편견이 없어 종종 문제가 생긴다

 

몇달전 티노에게 집에 라면이 너무 많으니 원한다면 가져가서 숙소에서 먹으라 한적이 있는데... 하루 이틀이 지난 어느날 회사에 앉아 있던 내게 의심스런 비주얼의 라면 사진이 도착을 했고, 10초 정도 생각을 하고 찬장에 있던 비빔면 하나가 안보였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 너 아마 라면 잘못 가져간 것 같은데, 그 라면은 그렇게 먹는거 아닌데.. 무슨 맛이었어..? 안 이상했어?

-이거 Sopa(수프,국물..)야 (아녀, 이 친구야)

-그거 봉지 혹시 파랑&흰색 아니었어?

-맞아, 되게 매워

-그건 국물 없이 차갑게 먹는거야, 다 먹었어?

-응...어쩐지.......***(나쁜말) 


문제의 비빔면....

 

또 다른 날, 새로 산 휴대용 버너와 불판을 개시하려고 모처럼 삼겹살을 사왔는데 생각보다 삼겹살이 너무 얇게 썰려 있었다

정육점 종이에 곱게 싸여있던 삼겹살을 풀어뒀는데 티노가 덥석 한줄을 집어가더니 입으로 가져가려 했다

 

-큰일나, 돼지고기 생으로 먹는거 아녀

-우리 동네에서는 이렇게 많이 먹는데, 나 베이컨 안 익히고 먹는거 좋아해

-베이컨 아니고 그냥 생 돼지고기니까 내려놔, 불판에 내려놔

 

최근 다른 한국인 커플과 POKE(밥이나 샐러드 같은거 위에 참치/연어 같은 생선, 토핑 올려 먹는 덮밥 느낌..?) 식당에 갔다

나는 밥 + 여러가지 고명+ 연어, 참치 를 고르고 소스 + 고추냉이 를 추가했고 티노는 밥 대신 샐러드를 고르고 얼추 비슷하게 재료를 골라서 주문 완료

 

음식 나오고 다같이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데 한국어 위주 대화가 오가는 사이 본인 몫의 식사를 끝내고 심심해하던 티노에게 내가 주문한 것도 맛보라고 한뒤 대화를 이어 가던 중 티노의 젓가락에 붙들려 가는 초록 덩어리가 시선끝에 걸려들어 무의식 중에 잽싸게 티노 손부터 잡아챘다

 

-아이고, 이거 내려놔 , 먹는거 아녀

 

말하면서 웃음이 터진 나와 어리둥절한 티노와 맞은편 한국인 커플, 

 

-왜요? 뭐에요? 왜그래요?

-이거 먹으면 안돼?

-이거 와사비....이렇게 먹으면 큰일난다 진짜

-와사비가 뭐야?

-와사비 이거 너 이렇게 먹으면, 아휴...이거 찍어 먹어봐 

-으익... 이게 뭐여....못먹는거네(오만상)

 

그릇 구석에 숟가락 반절쯤 되게 담아준 초록색 고추냉이 덩어리를 으깬 아보카도인줄 알고 신나게 집어 갔던 티노

너 진짜 그거 그대로 먹었으면 콧구멍 뒤통수까지 뚫려... 큰일 나.... 

 

 

그리고 엊그제.. 요즘 만두에 꽂힌 티노는 주방에 있던 내게 만두 3개를 주문했고.. 평소 같으면 간장+식초+고춧가루 섞은 양념간장을 같이 줬을텐데 뭔가 다른걸 하느라 정신이 팔려 만두만 내어줬고, 양념간장 맛을 알아버린 티노는 Salsa(양념,소스) 없이 만두를 먹을 수 없다며 간장과 식초병을 꺼내 대접에 콸콸 부어버림... 1 초만에.....

 

-야, 그만그만, 뭐하는겨

-만두는 이 양념 찍어 먹어야 맛있어

-아니 ***(나쁜말).... 그거 너 국그릇.... 그거 너 만두 진짜 100개는 찍어 먹을 간장인데 만두 4개뿐이잖아

-미안......나는 몰랐어....나는 이 양념간장이 너무 맛있어서....

-..... 너 그거 내가 반년동안 그 간장 반병 썼는데 지금 너가 1/4 병을 한번에 썼네

-미안, 다음번에는 조금만 할게, 히히 (간장에 만두 담가 먹는 중...)

-..........(복장 터짐)..............

-만두는 너무 맛있지 ( 간장에 빠진 만두 건져 먹는 중)

-너 그렇게 먹으면 나트륨 폭탄이여

-히히, 만두 넘 맛있당

-*** (나쁜말) ....잘도 먹네

 

 

정말 소소한 먹거리 에피소드가 차고 넘치지만 그래도 뭐든 잘 먹어서 예쁘다

그리고 내가 준 음식이라 나는 이미 아는 맛인데도 본인 입에 맛있으면 꼭 나한테도 먹으라고 한입씩 나눠주는 마음도 예쁘고, 다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체중 감량이 너무 힘들지 않게 적당히 먹었으면

 

최애 과자 바나나킥 먹는 쿨남.. 그렇게 한주먹씩 먹는거 아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바나나맛 우유 드링킹




한식당에서 배가 고프진 않은데 고기 딱 몇점만 먹고 싶다며 삼겹살 한근 먹고 딱 적당하다던 너...
그렇게 쌈 하나에 고기 네점씩 넣으면 진짜 한국에서 진짜 너 그거 한국 정서에 안 맞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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