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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juana,Mexico 2020.03-/일상

여섯째 글, 멕시코에 사는 꼬레아나



멕시코에는 생각보다 한국인이 많다

수도인 멕시코시티에도 많고, 4년간 살았던 몬테레이에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수천명은 살고 있을거다

 

몬테레이에서 한국 회사가 몰려 있던 지역이나,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동네 쇼핑몰이나 거리에서 심심치않게 한국인들을 볼 수 있었고 그 덕인지 몬테레이에서는 많은 멕시칸들이 동양인=치나(중국인) 이라는 편견이 덜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종종 중국 여자를 칭하는 치나, 치니따 소리를 듣긴 했지만

 

멕시코에 큰 뜻이 있거나, 이 나라를 잘 알아서 온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배운 스페인어로 어쩌다보니 취업을 했고 언어도 익히고 해외 생활도 이어나갈 겸 3년 정도 살아볼까 하고 왔다

 

보통 멕시코 하면 선인장, 사막, 황무지, 마약, 카르텔, 각종 범죄 등 떠오르는 이미지가 가히 긍정적이지는 않다

간혹 휴양지인 칸쿤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주위만해도 멕시코? 위험한 나라 아냐? 총 맞는거 아냐? 돈을 많이 주나, 겁도 없네 하는 반응이 더 많았다

 

우리 부모님께도 아들도 아니고 딸을 그 멀고 위험한 나라에 혼자 보내다니 대단 하네요 하며 대단하다는 칭찬인지 무모하다는 욕인지 모호한 늬앙스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더랬다

 

일단 나는 여기 부모님이 보내서 온게 아닐뿐더러, 애초에 아들이고 딸이고를 떠나서 그냥 부모님이 감당하기엔 고집과 추진력이 출중한 자식이었다 (실제로 엄마는 내가 멕시코에 취업 하면 어떨지 물었을 때 가~, 네가 가란다고 가고 말란다고 안갈거니 하셨다)

 

또 멕시코는 생각만큼의 무법천지가 아니다, 한국보다 땅이 크고 인구가 많은 만큼 고루 개발되지 않은 지역도 있고, 지역에 따라 갱단이 있거나 범죄율이 높은 지역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높디 높은 고층 건물들, 세상 호화로운 주상 복합 아파트들과 고급 주택단지가 즐비한 동네도 도시마다 있고, 그 사이 어딘가 적당히 안전하고 동네 슈퍼나 식당까지 걸어가거나 산책을 할 만한 공원이 있는 동네들도 많다. 

 

보편적인 치안이나 특히 야간 치안이 한국보다 불안정하고, 교통법규 위반으로 단속에 걸렸을 때 면허증 밑에 지폐 한장 슥 끼워 내미는 방법이 아직 통하는 동네도 많지만 (사바사,케바케. 안 통할 때도 있다) 세상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안전한 동네에서 가능한 밝을 때, 밝은 곳으로, 가능한 또렷한 정신으로 다니면 크게 위험할 일도 없다는게 개인적 의견이다

(멕시코 사는 동안 평균 1년에 1-2번 안전하다고 생각한 동네,장소에서 총격 사건이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어쨌든, 3년에서 길면 5년쯤 하고 시작한 멕시코 생활을 3.7년쯤 이어가다 2019년 말 급격한 심경의 변화로 한국으로의 복귀를 시도했다가 2020년 2월 말에 다시 돌아온 후 그냥 당분간은 몇년이 될지 생각하지 말고 내 집이겠거니 하고 살자 마음 먹었다

 

멕시코 생활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치안도, 극적인 더위와 추위가 공존하는 몬테레이의 혹독했던 날씨도, 음식이나 일상에서 느껴지는 문화차이도 아니고 회사 생활이다

지금까지 쭉 한국회사 혹은 한국상사 밑에서 근무해오며 2020년의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7080느낌의 사문화도 있었고, 통역직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인-멕시칸 직원/고객/거래처 간데 양국 문화가(특히나 업무에 대한 태도) 어마하게 충돌하는 틈에 낑겨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

 

하지만 그건 멕시코 잘못이 아니니까, 그 외에는 내가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하는 아는 사람도 없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절대 급여가 많은 것도 멕시코 물가가 엄청 싼 것도 아니지만 이건 나중에 따로 쓰겠다) 취미 생활의 폭이 넓고, 시간이 갈수록 생긴 다양한 친구들 덕에 멕시코 생활에 나도 모르게 녹아들었다.

여행과 어학연수로 겪은 스페인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는 달리 멕시코는 속 터지는 행정 업무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서비스, 종종 겪는 인종 차별 등도 있지만 그냥 미운정고운정 다 들어 애증이 7:3정도가 되어버린 그런 곳이다. 

 

나고 자란 한국도 애정 100은 아닌데 7:3 정도면 살만한 곳이겠지

 

그리고 나는 낯가림이 있지만 관심받는걸 즐기고, 또 너무 직접적인 관심은 부담스럽지만 은근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내성적인 관종이어서 평범한 일상에서(친구들과의 모임, 맛집 탐방, 등산, 체육관 가기...) 자연스레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멕시코의 장점이다 (종종 나쁜 관심도 있지만)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란 말과 비슷하게 몬테레이에서 자주 가던 외국인 모임이나 다른 외국인들을 만날 자리가 있을 때도 한국인은 눈에 띄는 외국인이고, 스페인어도 할 줄 아는 한국인이어서(동양인이 스페인어 못할거란 편견 많음) 어디서든 환대를 받는 외국인들의 외국인 같은 느낌 ㅋㅋㅋㅋㅋ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어져 생기는 외로움이나 그리움은 있지만 위에 언급한 것 처럼 내가 뭘하든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훨씬 자유롭고, 주변인이 적어지니 일하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 온전히 내가 원하는 것에 쓸 수 있다

한번쯤 배워볼까 싶었지만 그냥 이래저래 미뤄왔던 복싱은(종합격투기로 바뀌었지만) 벌써 3년차에 접어들었고, 한국에서라면 생각도 안했을 살사와 바차타 수업도 두어달 다니고, 종종 춤도 추러 다녔다.

심지어 나는 그 흔한 클럽도 멕시코에서 처음 가봤다. 양쪽에 덩치 좋은 든든한 친구들을 끼고 클럽도 가고 늦은 시간 몬테레이 센트로를 누비며 멕시코 스타일 엘로떼(옥수수) 랑 따꼬도 사먹고

풀파티며, 독립기념일, 크리스마스, 연말 파티도 신나게 다니고( 모두 코로나 사태 이전...ㅠㅠ)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원피스도 사고 치마도 사고 아무튼 그냥 한번쯤 해볼까 생각이 들던건 다 해봤다

 

당연히 한국에서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들이지만 그냥 괜스레 여자가 격투기를 해? 오~클럽도 다녀? 네가 치마를 입었어? 여자 다됐네~(한번도 남자인적 없음) 하는 별거 아닌 한마디들이 신경쓰여 굳이 할 필요 있나 하고 주저하게 되었던 것들이다,

 

생각해보니 진짜 멕시코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네.... 클럽도 그냥 클럽, 게이클럽, 게이클럽은 아니지만 그냥 게이 친구들이 많은 클럽 다양하게 가보고, 이자리를 빌어 밤문화에 눈 뜨게 해준 내 멕시코 짱친 두명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것도 나중에 따로 써야겠다

 

내가 겪은 멕시코에 대해서도 따로 써야겠다

 

아무튼 나는 멕시코에 살고, 한국인이고, 은은한 관심을 좋아한다, 이 글을 이틀에 걸쳐 쓰다보니 시작할 때 쓰려던 주제가 뭐였는지 모르겠다

내 글은 산으로도 갔다가 바다로도 가고 공기 중에서도 떠도는 것 같다, 말이 많은 나라서 글도 조절이 안된다, 말은 듣는 사람이 끊어주기라도 하는데 이 글들은 끊어줄 사람이 없으니

 

어쨌든 평화롭게 멕시코 살이를 하고 있는 꼬레아나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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