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게으름을 피우다가 12시가 넘어 티후아나 바닷가에 있는 식당에 가려 길을 나섰다
Semana Santa (부활절 주간)의 토요일, 봄과 초여름 사이쯤 햇살 좋고 바람은 선선한 날 바닷가 식당 골목에 발디딜 틈 없이 늘어선 차와 사람들, 호객 행위 중인 식당 사람들.... 코로나는 정말 다른 세상 얘기같다.
밥 먹고 산책이나 하려 나왔는데 평소보다 배는 높여 써둔 간이 주차장 가격표에 붐비는 식당가를 보니 차를 대고 싶지도 않았다
같이 간 티노한테 배 얼마나 고프니 물으며 티후아나에서 30km쯤 남쪽으로 Popotla 로 운전대를 돌렸다, 대답은 별로 들을 생각이 없었고, 따땃한 햇살에 졸기 시작한 티노는 어디로 가든 개의치 않을테니
쭉 뻗은 해안 도로변에 이렇다할 이정표도 없이 허술한 벽 하나 두고 자리 잡은 식당, 여차하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입구로 들어가는데 주차장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경치에 오길 잘했다 싶었다
Queso fundido (치즈 퐁듀) , 구운 문어 요리, 피자를 주문하고 식당에서 준 치즈랑 올리브를 집어 먹으며 연신 사진 찍기에 바쁘다가 음식이 나오고 부터는 또 먹기 바빴다
계산서 기다리며 서로 자리 바꿔 앉아가며 사진을 찍어주는데 햇살 들어오는 창문을 마주하고 앉은 티노가 사진에 굉장히 화사하게 나왔다, 내가 잘 찍어준 덕분이겠지
사진으로 보니까 너 되게 외국인같이 생겼다, 되게 외국인같이 생겼네 하고 실없는 소리를 하고 한국인인 내 기준으로 외국인, 우리가 살고 있는 멕시코 기준으로도 실제 외국인인 티노는 뭔소리여 싶어 어리둥절
나오는 길 식당 테라스에서, 바닷가 절벽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식당 마당에서 불어오는 바람 맞으며 신나게 찍은 사진들은 거센 바람 덕에 산발한 머리와 날리는 옷, 화면을 보지 않고 셔터를 누르는 티노의 기막힌 사진 기술로 몇장 건지지는 못했다 ㅎㅎㅎ
교통체증을 뚫고 티후아나로 돌아와 정육점으로 직행
먹는 양이 남다른 나와 티노를 위해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게 지난달에 휴대용 가스렌지와 불판을 샀다
우선 삼겹살 1kg, 구이용 소갈비살도 1kg 주문하는데 티노의 눈이 바쁘게 움직이다가 내 휴대폰까지 빌려 뭔가를 검색하더니 정육점 직원에게 설명하는데 직원이 영 못알아듣는 눈치..
답답해진 티노가 아르헨티나에서 먹는 Vacio 라니까 대번에 아, Falda! 하며 직원이 멕시코에서 부르는 명칭을 알려줬다 (한국어로는 치마살인듯)
그렇게 직원이 이 부위가 맞느냐며 들고 온 치마살도 한근, Molleja (부드러우면서 살짝 쫀득하고 좀 느끼하고 별 생각 없이 먹던 부위인데 지금 찾아보니 침샘 이라한다..한국에서도 먹는 부위인지는 모르겠다) 도 한근
3킬로가 넘는 고기를 사고 직원이 더 필요한건 없니? 했더니 티노가 손사래를 치며 우리 둘뿐이어서 이정도도 많아요 한다, 나는 애초에 일주일 두고 먹을 고기를 사는건데 티노는 이걸 한끼에 먹을 심산으로 고르고 있던거다....
2시쯤 점심을 먹었고 장을 봐서 집에 오니 6시쯤, 생각보다 고기가 많아 휴대용 가스렌지로는 버겁겠다 싶어 경비실에 아파트 옥상의 그릴 사용 허락까지 받았는데 계속 차로 이동한터라 배가 별로 안고프다
하지만 신선한 Vacio 를 구한 티노는 이미 흥이 한껏 올랐고 일요일인 다음날까지 기다릴 수 없는 우리는 아파트 헬스장에서 한시간동안 땀 뻘뻘 흘리며 운동을 했다...
운동 끝나고 집 근처 편의점에서 숯 한 자루에 라이터도 사고, 냉장고 채소들,각종 소스,음료수 몇달째 묵혀둔 맥주까지 바리바리 쟁여들고 옥상으로
분명 낮에는 반팔 입기 적당한 따뜻한 날이었는데 해가 완전히 넘어갔고, 가뜩이나 높은 지대에 위치한 아파트에서도 옥상은 찬바람이 쌩쌩이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기로 한다, 불 피우면 따뜻해지겠지...
씩씩하게 그릴 커버를 벗겨내고 숯자루를 끌어왔더니 LPG 가스통 연결해 쓰는 가스 그릴이었다ㅎㅎ
아르헨티나 ASADO 를 보여주겠노라 신났던 티노는 가스불은 맛이 다르다며 잠시 실망했다가 이내 그릴 청소와 고기 손질에 집중, 야채 좀 이렇게 저렇게 올리라 했더니 아르헨티노한테 Asado 조언을 하는건 내가 너한테 밥 짓는 법과 젓가락질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본인이 몇살때 어떻게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 법을 배웠는지 읊어주며 맥주나 한캔 따 달란다.... 오구오구, 잘났다
뽕짝과 다소 비슷한 느낌의 아르헨티나 밴드 노래를 틀어 두고 한손에 집게를, 한손에 맥주캔을 든 티노와 들썩들썩 안되는 춤판을 벌여 두고 낄낄대며 고기 익기를 기다리자니 별거 아닌데도 괜스레 행복한 기분이었다
배도 그닥 고프지 않았는데 버섯이며 고구마, 아스파라거스가 익는 족족 집어 먹고 2kg에 가까운 고기를 먹어치우고 그릴 청소랑 테이블 뒷정리까지 싹싹 마치고 만족스런 저녁 식사가 끝났다
그릴 테스트도 해봤겠다, 날씨도 점점 좋아지겠다 다음번에는 친구들도 초대해서 제대로 고기 파티 한번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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