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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juana,Mexico 2020.03-/일상

열한번째 글, 멕시코에 사는 꼬레아나 #2

문득 생각이 나 쓰는 글
티후아나의 치안에 관하여

이전 글에 멕시코 치안이 무법천지까지는 아니라는 내용을 썼다
이리저리 기억을 뒤적이며 내가 폭력,도난,강도 등 직접적인 큰 물리적 위협을 받은 적이 없다는 생각으로 그 글을 썼는데 갑자기 오늘 그 글을 다시 보며 머리를 스치는 몇몇 장면이 있어 글을 쓰고 있다

길에서 스쳐 지나가며 치나, 치니따(중국여자) 거리는 몇몇 못배워먹은 사람들 이외에 좀 더 집요하게 뒤통수 혹은 과감하게 앞통수에 대고 불편한 말을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몬테레이에서 살던 어느 주말, 내가 좋아하던 산에 혼자 등산을 간 적이 있다
운동 삼아 쉬지 않고 빠르게 올라가던 중에 계곡가를 지나며 사람들이 몰려 있어 잠시 주춤거리고 있는데 바로 옆에 무리 지어 서있던 청소년들 중 한껏 허세를 부리는 남자아이 목소리... (세계 공통 중2병 시기인가보다...)

-야야, 저기 치니따 하나 있다, 안녕, 치니따
-ㅋㅋㅋ 뭐하는거야, 하지마 (키득거리며 말리던 다른 아이)
-ㄴㄴ, 중국인들 어차피 못알아들어, 볼래? 안녕, 치니따

첫마디까지 듣고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굳이 주말 아침 산뜻한 기분을 망치고 싶지도 않고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어서 그냥 지나가려 하는데 동양인들이 스페인어를 못할거란 편견도 우습고, 알아듣지 못할거라 생각하고 이유 없이 비웃는 것도 못된 행동인걸 굳이 알려줘야 하는 친구들 같아 슥 쳐다봤다.

-야, 여기 보잖아
-ㄴㄴ, 못알아듣는다니까?
-ㅇㅇ, 알아들어, 그리고 나 중국인 아냐

시선을 마주치면서도 당당하게 쟤는 내 말 못알아 들어 하며 낄낄대던 청소년을 마주보고 최대한 담담하게 내가 너희들 말을 다 알아듣고 있으며, 중국인도 아니라고 그 친구들 언어인 스페인어로 얘기해줬다

아주 악질은 아니고 그저 친구들 앞에서 알 수 없는 허세로 떠드는 경우였고, 주위에 사람들도 충분히 있어 위협적이기보다는 기분이 상하는 상황이어서 나도 굳이 짚고 넘어간거였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진 그 친구는 당황해서 나에게 너는 등산왔니, 어디 루트로 가니? 하는 전혀 맥락이 맞지 않는 말을 내뱉었고 옆에서 눈치를 보던 친구들은 멍청한 친구가 한방 먹은 모습이 우스웠지만 또 웃을 상황은 아니라 느껴졌는지 안간힘을 쓰며 웃음을 참는 얼굴로 본인들 친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보다시피 등산왔고 어디로 가는지는 네가 알바겠니 하고 뒤돌아서 가던 길로 다시 발걸음 떼기 시작하니 그제야 뒤에서 왁자하게 다른 친구들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터졌다, 꼭 망신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지... 차렸으면 다행이지...


그리고 작년 3월 코로나가 전세계적인 문제로 번져가며 심각성이 더해질 무렵 몬테레이에서 티후아나로 오는 비행기를 타게 됐다
한국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었지만 멕시코는 그때까지만해도 코로나 라는게 유행한대, 중국에서 왔대 하고 알고는 있어도 별다른 방역수칙이랄게 없던 시기였다
어쨌든 나는 마스크를 쓰고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고 탑승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 비어있던 바로 옆자리를 보며 여유있게 가겠네 하는 참에 어느 멕시칸 중년 부부가 저 앞에서부터 뜨거운물까지 받아온듯한 컵라면 하나를 들고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오고 있었다
설마....하는데 슬픈 예감은 빗겨가질 않고 내 자리쪽 통로에 멈춰선 여자가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본인 비행기표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우리 치나 옆자리에 앉게 생겼네

진심...? 아니, 남편이 아니라 나 들으라고 한건가? 이른 아침부터 숙소 체크아웃하고 비행기 타러 나오느라 이미 잔뜩 피곤해서 비몽사몽 반쯤 늘어져 있던 와중에도 짜증이 훅 치밀어 올랐다......나도 아침 7시부터 컵라면 냄새 풀풀 풍기며 뒤늦게 비행기 올라타 씩씩대며 본인들 짐 구겨 넣을 자리 찾는다고 좌석 위 짐칸 죄다 열어재끼고 남들 짐 밀어대는 예의 없는 사람들 옆에 낑겨가고 싶지 않아....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냥 조용히 하는 모양새 지켜보며 앉아 있는데 꾸역꾸역 본인들 짐 밀어넣기에 성공하고 뒤늦게 본인들 탑승권 확인한 남자가 우리 자리 여기 아니고 저기네 하며 옆라인을 가리키자 그제서야 만족스러워진 표정의 여자가 내 옆자리로 밀어넣던 엉덩이와 소중한 컵라면을 들고는 자리를 옮겨갔다.

이전글에서 한번 쓴적이 있듯이 사실 몬테레이에서는 치나 놀림을 받은적이 거의 없었는데 티후아나 와서는 일주일에 한번은 듣는 것 같다... 지나가는 행인, 편의점 문을 드나들다 마주친 사람, 월마트 입구 직원, 모든 고객에게 Buenas tardes 하며 인사를 건네다 내 차례가 되자 니하오 하며 미소 짓던 마트 직원, 주유소 직원....

허나 위의 내용들은 그저 기분이 조금 상하고, 정말 예의라고는 못 배워 먹은 사람들이구만 하고 넘어갈 정도의 일이고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지금 쓸 내용이다

티후아나에 온지 아마 두어달쯤 됐을 무렵 어느 주말 오후, 회사에서 필려준 픽업트럭을 타고 외출 하던 길 제법 큰 길가 신호에 걸려 서 있었다

햇빛도 좋고 바람도 선선해서 운전석 창문을 반쯤 열어두고 멍하니 신호등을 쳐다보던 시선 끝에 저 앞쪽에 큰 덩치에 허름한 차림의 여자 한명이 도로에 서 있는 차들을 기웃거리나 싶더니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내 차쪽으로 달려왔다
잔뜩 화난 표정으로 괴성을 지르며 다가온 여자는 손에 뭔가를 들고 깡깡 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운전석 창문을 두드려대더니 급히 닫아 올리는 창문틈으로 내게 그 뭔가를 집어 던졌고 머리 끝을 스치고 뒷좌석으로 떨어진 그 무언가를 보니 오백원 동전보다 조금 큰 돌맹이 하나와 그 돌과 엇비슷한 크기의 플라스틱 조각이었다
닫힌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던 여자를 애써 모른척하고 초록으로 바뀐 신호에 서서히 엑셀을 밟기 시작하자 다행히 쫓아오지는 않고 다른 차들 쪽으로 가버렸다..

처음 겪는 상황에 놀라고 화난 마음으로 대체 왜 나한테...? 인종차별인가...? 근데 또 다른 차한테도 달려들었는데...?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그 사람을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으니 그냥 잊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점심시간 무렵 회사 일로 외출 했다 돌아오는데 공사 중인 큰 길 대신 다른 차들을 따라 골목길로 진입을 했고, 좁은 골목길은 같은 이유로 진입한 차들로 꽉 막혀있었는데..... 온다 ..... 저 앞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차림새의 깡 마른 남자 하나가... 조약돌 수준이 아닌 뗀석기 수준의 돌덩이를 들고 서 있는 차들을 차례로 위협하며 가까워지던 남자는 내 차 창문 옆에서도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당장이라도 유리창을 칠듯이 돌을 들어올렸다 내리길 반복하다가 본인에게 관심을 주기는 커녕 미동도 없이 앞만 보고 있는 나를 힐끗 보더니 다음 차로 옮겨 갔다...

대체 갑자기 며칠 간격으로 왜 이런 일이....??? 했던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티후아나 현지 친구를 통해 풀렸다

-그거 마약 중독자들이야, 국경지역이다 보니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들도 많고 약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 어떤 약들은 그냥 취해서 몽롱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중독자들 중에 돈이 떨어지면 환각 증상이 있는건 휘발유든 접착제든 찾아 하다보니까 그렇게 길에서 약에 취해서 해꼬지 하기도 해, 그 사람들 눈 보면 제정신 아닌거 보일걸..

와우.... 그래....... 눈빛이 둘 다 보통이 아니었지.....그냥 거리인들의 모습이랑은 확연히 다른 눈빛이었지.....
몬테레이에도 거리에 구걸이나 잡동사니, 간식거리 등을 파는 사람들도 있고 거리에서 생활하는듯 보이는 사람들이 있긴했지만 티후아나는 그 수가 눈에 띄게 다르다
그리고 위의 얘기를 듣고 난 후로는 그냥 노숙인들과 뭔가에 취해있는 사람들의 차이가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걸어다닐 일이 거의 없기도 하고 이제 조심해야 할 사람들을 발견하는 눈이 좀 생겨서 잘 피해다니긴 하지만 쨌든 물리적인 위협이긴했다....

뭐 쓰고 보니 별 것 아닌 느낌이지만 쨌든 내가 직접 겪은 위험한 상황들은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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