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말할 것도 없이 한국까지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
호주와 스페인에서 잠깐씩 지냈을 때도 멀다멀다 했지만 여긴 한단계 더 멀다, 거리도 더 멀고 비행편도 더 적을뿐더러 표값은 당연히 더 비싸다
거리가 멀어서 나쁜 점은 우선 가족이나 친구들을 자주 볼 수가 없다는 점, 이전 글에 거리가 멀어서 생긴 애틋함이 좋다 해놓고 무슨 말이냐 할 수 있지만 가끔은 민낯과 철없음을 보여줄 수 있는 편한 사람들과 아무 생각 없이 낄낄대며 맛있는거 먹고 수다나 떨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게 안된다
특히 오랜 친구들과 우리끼리 아는 추억거리 곱씹고 실없는 소리 해대며 낄낄깔깔 하거나 생일, 어버이날, 명절, 생일, 각종 기념일에 소박한 선물에 맛있는 것들 먹으면서 가족들끼리 시간도 한번씩 보내고 싶을 때, 코딱지만했던 어린 친척 동생들, 조카들 사진 랜선으로 바라보며 너희는 내가 누군지나 알까 생각이 들 때, 멕시코가 어디 붙은 나라인지 스페인어가 무슨 말인지는 잘 몰라도 멀리 해외에서 외국말 쓰며 일한다니 우리 손녀 대단하다고 뿌듯해 하시는 이제는 시골집에 혼자 계시는 외할머니 생각이 날 때, 그럴 때 아쉽다
또, 요즘은 어딜 가나 한식당 없는 곳이 거의 없다지만 그래도 군것질을 좋아하는 나는 길 가다 편의점에서 내 입맛에 맞는 과자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 1인분에 몇천원이면 사먹는 분식, 시장 떡집에 오천원에 두세팩씩 묶어 파는 종류별 떡들부터 아주 한국스러운 음식들, 식당을 하는 부모님 덕에 집에 언제나 있던 철마다 종류가 다른 김치며 제철 반찬들이 먹고 싶을 때도
멕시코 은행이나 공공기관에 볼 일이 있을 때 느리고, 비체계적에 종종 불친절까지 더한 업무 처리에 좌절감까지 느껴질 때.....외국인이라 이유 없이 차별 당하거나 칭챙총 거리는 무례한 사람들 마주칠 때
근데 뭐 위에 있는 것들은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들이고 이미 익숙해졌다
내가 여기 있는게 맞는지, 그냥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좋은 날들, 좋은 소식들은 멀리 있어도 기쁘게 전달하고, 당장은 같이 못 있는다해도 언제든 만났을 때 늦게라도 축하가 가능한데 보통 좋지 않은 소식들은 그렇지 않다
2012년, 스물세살이 되던 해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처음 해외에 나갔을 때, 암수술을 받은지 1년 반쯤 지났던 엄마가 내가 호주에 간 후 나에 대한 염려때문에 그 스트레스로 건강이 또 안 좋아졌었다는걸 나는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야 할았다
2015년 스페인에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 어릴적 돌아가신 친할아버지 대신 명절이며 각종 집안 행사에서 할아버지 역할을 해주신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장례가 치뤄지고 있을 때야 들었고, 소식을 늦게 들은 것도 있지만 학생 신분에, 이제 막 스페인에 온지 두달 남짓이던 내가 장례식 참석을 위해 비행기를 탈 여유는 당연히 없었다
어찌보면 직계도 아닌데, 요즘 세상에 왕래도 없는 친척들도 많은데 작은 할아버지 일까지 신경쓰는게 유난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 같은 도시에서 살며 자주 뵈어 친할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멀고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조의를 표하는 마지막 자리에 가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과 속상함과는 별개로 그간 위독하시다는 소식조차도 전해 듣지 못했다는 것에 의아했다
이후 엄마와 통화를 하게 됐을 때 네가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힘든 일 얘기하면 속만 상하고 괜히 마음 쓰일까봐 얘기하지 않았다셨다,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상주인 당숙께 인사 정도는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늦게나마 소식을 전달했다고
묘하게 배신감과 서운함이 느껴졌다, 그럼 더 가까운 가족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차피 나는 당장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그럼 또 나는 소외되는건가, 내 마음이 상할까 싶어 배려한 것이라지만 그 배려가 나와 한국에 있는 가족들, 내 가까운 사람들 간에 벽이 되는 느낌이들어 더 속이 상했다
엄마 탓을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혹시라도 다음번에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생기는대로 나에게도 꼭 연락을 달라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게 없다해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뒤늦게 알고 속상함에 죄책감까지 갖는 것보단 미리 알고 마음으로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멕시코 생활이 3년차에 접어 들던 2018년 11월, 휴가로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지 막 한달쯤 지난 무렵 아침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나 엄마에게 보이스톡이 왔다
시차 때문에 지금 한국은 새벽일텐데 하는 생각과 갑자기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고 조용히 사무실을 나가 전화를 받았다
의문스레 받은 전화 너머로 들리는 가라앉은 엄마의 목소리, 너무 놀라지 말고 들으라는 떨리는 목소리에 이미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 사고가 있었다, 읍내 병원에서 대구 큰병원으로 이송 되셨으나 손 쓸 도리가 없다, 가족들이 다 모이는 중이다...가슴은 두방망이질 하고 머리는 새햐얘지는 느낌이었다
착 가라앉은 와중에도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는 내 걱정을 시작했다, 한국에 다녀간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할아버지도 뵙고 갔었는데 다시 오기에는 너무 멀고 힘든 길이다, 마음으로 보내드려도 괜찮다고
스무살 무렵 사정이 있어 외갓집에서 잠시 지내며 할머니,할아버지의 일상을 들여다 본 후로 나는 두분과 나 사이에 전과 다른 끈끈하고 애틋한 무언가가 생겼다고 느꼈다, 때때로 할머니 할아버지께 따로 전화를 들어 안부를 묻고, 부모님과 함께가 아니어도 두분을 찾아뵙는게 어색하지 않았고 내 기억속 항상 무뚝뚝한 경상도 할아버지는 짧은 통화를 할 때마다 전화비가 많이 나온다는 걱정과 전화해줘 고맙다 하는 말로 전화를 끊곤 하셨다
오지 못해도 괜찮다는 엄마 말이 끝나기 전에 내가 괜찮지 않아서 꼭 가야겠다고, 아직 혹시 모르지 않느냐고, 최대한 빨리가겠다 얘기하고 전화를 끊고 쉬이 차분해지지 않던 호흡을 가다듬고 사무실로 돌아가 당시 상사분께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바로 휴가 승인이 떨어져 급한 일들을 정리하고 인수인계 준비를 하는 나를 대신해 친한 한국분이 비행기표를 대신 알아봐주었다. 일주일에 4번 운행하는 직항 항공편이 없는 날이어서 멕시코 다른 도시와 중국 상해를 거쳐 서른 시간 가까운 비행이었지만 당일 저녁에 출발이 가능하고 가능한 항공편 중 한국 도착 시간이 가장 빨랐다.
회사를 나와 집에서 간단히 짐을 챙기고 항공권을 확인하고 다시 엄마에게 연락해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할아버지가 조금만 더 버텨주셨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긴다면 꼭 알려달라고, 메시지라도 보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저녁 비행기를 타러 도착한 공항이었는지 이미 경유지 공항이었는지 아빠 연락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장례식장은 어디에 마련될테니 그쪽으로 오면 된다고
이제 막 멕시코를 출발하는 중에 사실을 알면 오는 길 내내 혼자 슬퍼할 내가 걱정이 되어 엄마는 내게 연락을 못했다한다.
입을 다물고 줄줄 흐르는 눈물을 참다가 화장실에 숨어 울다가 잠이 들었다가 인천 공항에 도착해 외갓집 동네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찾기도 하면서 길고 긴 비행 시간을 보냈다 지금 내가 진짜 한국에 가는건가? 무슨 일이지 대체, 왜 이런일이 생겼을까, 나는 왜 지난 휴가 때 외갓집에서 시간을 더 안보냈을까, 할아버지가 주시던 용돈을 거절 말고 받을걸, 내년 휴가때까지 내가 있을랑가 모르겠다, 할아버지 너무 믿지 마래이 하고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셨던 할아버지한테 그런 말씀 하시지 말라고 내년엔 더 맛있는거 먹고 좋은데 모시고 가겠다고 큰소리 땅땅쳤는데 할아버지는 뭔가 느끼셨던걸까 하고 별 생각이 다들었다
처음 연락을 받고 회사를 조퇴 하고 당일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광명역으로, 케이티엑스를 타고 대구역으로, 또 시외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서 최대한 서둘러 간 40시간이 조금 더 넘는 그 시간동안 위독했던 할아버지는 영안실로,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이미 장례 이틀차 저녁이 되었다.
한국땅을 밟고,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이사이 차분한 목소리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택시를 타고 도착한 나를 마중하기 위해 나온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다시 무너졌고 엄마를 부축해 들어간 장례식장 영정 사진 앞에서, 오느라 고생했다 맞아주는 할머니와 친척분들 앞에서 너무 늦게 도착한 죄스러움에 뒤늦은 절을 올리며 눈물만 줄줄 흘렸었다
이렇게 멀구나, 우리 집에, 가족에 무슨 일이 생겨 내가 모든 일을 팽개치고 당장 달려와도 이만큼 먼 길이었다
마음의 준비 같은걸 할 새를 주지 않고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었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도 혹은 반대로 내가 항상 건강하고 안전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장례가 끝나고 잠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멕시코로 돌아온 후로도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고, 그 다음해 한국과 멕시코 중간에서 만난 가족여행에서 한번, 한국에 잠시 들어간 몇개월의 시간동안 또 한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한국에 들어가 정착을 해야할지 고민을 거듭했지만 아직까지는 결단이 서지 않는다
내가 조금 더 대책을 마련해둬야지, 자리를 잘 잡아둬야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방안을 찾아봐야지 하면서 아직은 여기 머물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다.
일상의 나를 생각하면 여기가 좋다, 이전에 쓴 멕시코에 살아 좋은점들이 많고 시간이 갈수록 떠나기 어려운 이유들이 확고해진다. 그래서 어디에 살든 좋기만한 곳은 없을테니까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서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더 이상은 예측 불가능한 나쁜 일들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며 일단은 여기 머무는걸로...
'Tijuana,Mexico 2020.03-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흔치 않은 직업 (0) | 2021.10.27 |
---|---|
휴가 (0) | 2021.08.12 |
무슨 의미야 (0) | 2021.07.30 |
멕시코에 산다는 것, 좋은 점 (0) | 2021.07.10 |
만두 (0) | 2021.06.30 |